TAIPEI 2026
PAR AVION
From. 臺北 春山出版社
A Letter from Taiwan

대만에서 온 편지

來自臺灣的信

바다 건너 한 권의 책이 도착했습니다.
『전태일 평전』 대만판.
그 책을 만든 이들의 마음을
두 통의 편지로 옮겨 적습니다.

SPRING HILL · 春山 2026 · 公共相生連帶基金
First Letter
— 첫 번째 편지 —
춘산출판(春山出版)의 편지

전태일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창문입니다

"하이디스 노조의 투쟁을 본 그날부터,
우리는 이 길의 시작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대만판이 마침내 독자들과 만났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어떻게 바다 건너 대만의 책장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출간을 기획하고 다듬어낸 춘산출판사 편집부에 그 여정을 물었습니다.

Q. 먼저, 이 책을 펴내기로 결심하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왜 지금, 그리고 왜 '전태일'이었을까요?

먼저 감사 인사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대만에서 이 책의 출판 기회를 찾기 위해 앞장서 주신 왕야팡(Wang Ya-fang) 님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강연배 님, 그리고 출판을 허락해 주신 전태일재단과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주신 전순옥 의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희 편집자가 전태일이라는 이름에 깊이 끌리게 된 데에는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5년, 한국의 하이디스 노동조합이 공장 폐쇄와 정리해고에 항의하기 위해 대만을 찾았던 일입니다. 그분들은 촛불집회, 삼보일배, 삭발, 노숙 농성, 단식 투쟁까지 이어가며 싸웠습니다.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저희는 한국 노조의 조직력과 저항 문화를 처음으로 실감했고, 한국과 대만 노동운동 사이에 더 깊은 교류가 시작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투쟁 중에 전해진 배재형 하이디스 지회장의 비보는 지금도 저희에게 큰 충격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 저희는 '한국식 투쟁'이라는 것의 실체를 처음 마주했고, 그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 길의 끝에 전태일이 있었던 거죠. 또 최근 대만에는 한국 소설이나 대중 서적이 점점 더 많이 번역되고 있지만, 한국 사회와 문화의 맥락을 깊이 다루는 책은 여전히 드뭅니다. 전태일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창문 같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대만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는 일, 출판사 입장에서 어떤 의미가 있으셨나요?

한국 노동운동은 대만에 정말 좋은 참조점입니다. 두 사회 모두 일제강점기와 민주화 과정이라는 비슷한 역사를 거쳤지만, 노동운동의 길에서는 서로 다른 궤적을 그렸지요.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독자들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노동 문제는 결국 전 세계가 공유하는 화두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한국 노동운동만이 아니라, 2023년에는 미국 노동조합에 관한 책도 펴냈습니다. 대만에서는 노동 의식과 노조 활동이 아직 더 자라야 할 영역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이런 주제에 꾸준히 힘을 쏟고 있습니다.

· · ·
Q. 출간 이후 독자 반응은 어떠셨나요? 예상과 달랐던 점이 있다면요?

'전태일'이라는 이름과 그가 분신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살아온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기울였던 노력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말씀하시는 독자들이 많았습니다. 이 평전을 통해 비로소 그의 삶과 그가 한국 역사에 남긴 지속적인 영향을 이해하게 되셨다는 거죠. 그런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편집팀이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마음에 남은 장면이 있으셨나요?

몇 장면이 특히 잊히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았으면서도, 타인을 사랑하고 돌보는 마음만은 끝까지 놓지 않았던 전태일의 모습. 평화시장의 처참한 노동 조건을 근로감독관에게 호소했지만 차가운 무관심에 부딪혔던 장면. 근로기준법에 큰 기대를 걸었던 그가 법이 시스템 앞에서 그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읽는 저희에게도 파괴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전태일은 단순히 더 나은 노동 환경을 꿈만 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범 업체'를 위한 매우 구체적인 계획안을 직접 작성한 사람이었지요. 그가 분신을 택한 것은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노동 조건을 근본부터 바꾸고 싶어서였다는 사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편집부 모두가 한참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Q. 앞으로도 한국 관련 도서 출간 계획이 있으신가요?

저희는 한국 문학과 역사,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번역할 만한 좋은 책을 계속 찾아갈 생각입니다. 춘산은 이미 황석영 작가의 소설 『철도원 삼대』를 펴낸 적이 있고, 올해 하반기에는 그의 자전적 기록인 『수인』도 출간할 예정입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어떤 독자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으신가요?

먼저 대만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한국 노동운동의 힘은 앞선 세대의 희생과 노력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사실, 대만이 거기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사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다음으로는 젊은 세대에게요. 지금 우리가 누리는 노동 환경이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문제들 역시 선배 세대의 경험 위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논픽션을 사랑하는 분들. 이 책은 낯선 이야기를 가장 뭉클한 방식으로 전해주는 보석 같은 작품입니다. 분명 마음에 닿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 End of First Letter ⸺
第 一 封 信 · 終
Second Letter
— 두 번째 편지 —
노홍금(盧鴻金) 번역가의 편지

전태일의 언어와 감정은,
국경을 넘어 닿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결심한 순간의 단호함과
그 끝없는 고통의 무게,
그것만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권의 책이 다른 언어로 옮겨지는 일은, 단지 단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삶과 시대, 그리고 그 안에 깃든 감정까지를 함께 옮기는 일이지요. 『전태일 평전』 대만판을 옮긴 번역가에게 그 길고도 깊었던 여정을 들어보았습니다.

Q. 『전태일 평전』을 번역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오래전부터 전태일 열사의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에서 그가 차지하는 상징적인 자리 또한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와 관련된 책을 직접 번역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이번에 춘산출판사에서 기회를 주신 덕분에, 그의 어린 시절과 소년기, 청년기의 발자취와 마음의 결을 한층 가까이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이자 축복이었습니다.

Q. 이 책을 처음 펼쳐 보셨을 때, 어떤 인상이 가장 강하게 남으셨나요?

전태일 열사는 한국전쟁 직후, 가장 가난했던 시절에 태어나 자라셨지요. 당시 한국이 물자 부족에 허덕였고, 1960년대 산업화 초기였던 만큼 정부가 노동자의 권익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는 정도는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노동자들의 생활과 작업 환경이 그토록 처참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읽으면서 한국 노동운동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더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꼼꼼히 읽고 옮겨가는 과정에서, 그 환경의 가혹함이 제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 · ·
Q. 번역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저자가 평문과 일기를 교차해 가며 서술하는 방식을 택하셨기 때문에, 대만 독자들이 책을 읽다가 혹시 혼란을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또 처음에는 제가 문학적이고 감성적인 표현 쪽으로 다소 치우쳤는데, 편집 선생님의 세심한 지적 덕분에 책 전체가 비교적 적절한 어조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전태일 열사가 주로 일하셨던 곳이 재봉업이었는데, 사실 저는 재봉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위 명칭이며 공정 하나하나에 관한 자료를 모으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지요.

다만 의외로,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적 맥락 자체를 대만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대만과 한국은 노동운동의 발전 과정이 닮았고, 비슷한 정도의 인권 침해를 겪었으며, 산업 구조도 유사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정말 많거든요.

Q. 전태일이라는 인물의 언어와 감정을 대만 독자들에게 옮길 때, 충분히 닿을 수 있다고 느끼셨나요?

네, 분명히 그렇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사상과 행동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통하는 보편적인 가치라고 생각하거든요. 한국과 대만이 국가적 상황도 다르고 정서도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인 인권을 지키려는 마음만큼은 똑같습니다. 대만 독자들도 전태일 열사의 언어와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함께 느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Q. 일기와 편지 속 날것의 목소리를 옮기실 때, "이건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고 느끼신 부분이 있으셨다면요?

두 대목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그의 어린 시절과 소년기의 가난한 삶입니다. 여러 차례의 가출, 현실에 짓눌리던 나날,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 막 싹트던 풋풋한 감정조차 끝내 접어야 했던 순간들. 이런 장면들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또 하나는, 노동자들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을 깨우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기로 결심했을 때의 그 단호함, 그리고 그 결심 끝에 있었을 끝없이 고통스러운 육체적 감각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가장 깊이 감동받았고, 가장 아팠으며, 그래서 독자들에게도 반드시 그 무게가 가닿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옮긴 대목입니다.

Q. 번역을 마치신 지금, 전태일이라는 인물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요.

이렇게 의미 깊은 책을 번역할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전태일 열사는 노동자의 권익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을 깨우기 위해 자신의 젊은 생명까지 제단에 바치셨지요. 이런 용기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이번을 계기로, 한국 노동운동의 흐름과 산업 구조가 비슷한 대만과의 연결고리에 대해 더 다양하게 배우고 이해해 가고 싶습니다.

· · ·
Q. 마지막으로, 이 책이 대만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이 책이 대만 사회에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저는 네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노동의 존엄은 타협할 수 없다 전태일 열사는 젊은 생명을 바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인간을 한낱 물건처럼 취급하고 존엄을 박탈하는 노동 체제를 고발했습니다. 지금 대만은 비정규직과 저임금, 과로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태일의 불꽃은 노동자가 생산 도구가 아니라 꿈과 감정과 권리를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2. 경제 성장의 그늘을 똑바로 봐야 한다 책에 그려진 평화시장의 번영 뒤에는, 열세 살 소녀가 하루 열여섯 시간을 일하고도 한 달에 겨우 3천 원을 받던 현실이 있었습니다. 대만의 경제 기적 또한 무수한 밑바닥 노동자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것이지요. 국민소득의 상승을 자축할 때,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짓눌린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3. 지식인의 자리와 책임 작가 조영래 변호사는 수배 중에도 현장으로 달려가 전태일의 흔적을 필사적으로 기록하셨습니다. "대학생 친구가 한 명만 있었더라면"이라는 그 한마디가 양심을 강하게 두드렸기 때문이지요. 학문이 상아탑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의 분투와 이어져야 한다는 것. 대만의 지식인들에게도 깊이 닿는 메시지라고 봅니다.
  4. 역사의 기억은 끊어져서는 안 된다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오십 년이 넘었습니다. 책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오늘의 전태일은 어디에 있는가?" 그 답은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자들 속에,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 속에 있습니다. 대만 또한 역사 기억의 단절이라는 같은 문제를 안고 있지요. 과거 투쟁의 의미를 잊는다면, 우리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Q. 그렇다면 이 책을 가장 먼저 어떤 독자에게 권하고 싶으세요?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분들은 청년 세대와 학생들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스물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오늘날 대학생이나 청년 노동자들과 거의 같은 나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업의 꿈이 좌절되고, 취업난에 시달리고, 불의에 분노하는 그의 시간은 지금의 청년들과 깊이 공명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 '각성'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운명에 순응하며 스스로를 '바보'라 부르던 사람이, 침묵을 거부하고 일어서기까지의 여정 말이지요. 세상에 지치고 무력감에 빠진 청년들에게 이 이야기는 강한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또 대만 청년들에게는 한국이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험난한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창문이 되어 줄 거라 믿습니다.

그다음으로는 노동운동가와 노조 간부들. 전태일 열사가 '바보회'와 '삼동친목회'를 조직해 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노동운동의 고전적인 사례입니다. 설문 조사부터 탄원, 시위, 그리고 마지막 결단에 이르기까지, 조직 과정의 좌절과 조합원들의 위축, 사측의 탄압과 관료의 결탁이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오늘의 활동가들에게 더없이 귀중한 참고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인권과 사회 개혁에 관심을 두신 지식인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인권 변호사로서 수배 중에도 기록을 멈추지 않은 조영래의 자세, 그리고 책 속에 녹아 있는 '노예의식'과 '똑똑한 사람과 바보'에 대한 깊은 통찰은, 글과 학문과 법을 업으로 삼는 모든 분들께 묵직한 성찰의 시간을 선사할 것입니다.

⸺ End of Second Letter ⸺
第 二 封 信 · 終

『전태일 평전』 대만판 출간 기념 인터뷰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 ·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