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창문입니다
"하이디스 노조의 투쟁을 본 그날부터,
우리는 이 길의 시작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대만판이 마침내 독자들과 만났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어떻게 바다 건너 대만의 책장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출간을 기획하고 다듬어낸 춘산출판사 편집부에 그 여정을 물었습니다.
먼저 감사 인사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대만에서 이 책의 출판 기회를 찾기 위해 앞장서 주신 왕야팡(Wang Ya-fang) 님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강연배 님, 그리고 출판을 허락해 주신 전태일재단과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주신 전순옥 의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희 편집자가 전태일이라는 이름에 깊이 끌리게 된 데에는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5년, 한국의 하이디스 노동조합이 공장 폐쇄와 정리해고에 항의하기 위해 대만을 찾았던 일입니다. 그분들은 촛불집회, 삼보일배, 삭발, 노숙 농성, 단식 투쟁까지 이어가며 싸웠습니다.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저희는 한국 노조의 조직력과 저항 문화를 처음으로 실감했고, 한국과 대만 노동운동 사이에 더 깊은 교류가 시작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투쟁 중에 전해진 배재형 하이디스 지회장의 비보는 지금도 저희에게 큰 충격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 저희는 '한국식 투쟁'이라는 것의 실체를 처음 마주했고, 그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 길의 끝에 전태일이 있었던 거죠. 또 최근 대만에는 한국 소설이나 대중 서적이 점점 더 많이 번역되고 있지만, 한국 사회와 문화의 맥락을 깊이 다루는 책은 여전히 드뭅니다. 전태일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창문 같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노동운동은 대만에 정말 좋은 참조점입니다. 두 사회 모두 일제강점기와 민주화 과정이라는 비슷한 역사를 거쳤지만, 노동운동의 길에서는 서로 다른 궤적을 그렸지요.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독자들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노동 문제는 결국 전 세계가 공유하는 화두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한국 노동운동만이 아니라, 2023년에는 미국 노동조합에 관한 책도 펴냈습니다. 대만에서는 노동 의식과 노조 활동이 아직 더 자라야 할 영역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이런 주제에 꾸준히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전태일'이라는 이름과 그가 분신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살아온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기울였던 노력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말씀하시는 독자들이 많았습니다. 이 평전을 통해 비로소 그의 삶과 그가 한국 역사에 남긴 지속적인 영향을 이해하게 되셨다는 거죠. 그런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몇 장면이 특히 잊히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았으면서도, 타인을 사랑하고 돌보는 마음만은 끝까지 놓지 않았던 전태일의 모습. 평화시장의 처참한 노동 조건을 근로감독관에게 호소했지만 차가운 무관심에 부딪혔던 장면. 근로기준법에 큰 기대를 걸었던 그가 법이 시스템 앞에서 그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읽는 저희에게도 파괴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전태일은 단순히 더 나은 노동 환경을 꿈만 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범 업체'를 위한 매우 구체적인 계획안을 직접 작성한 사람이었지요. 그가 분신을 택한 것은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노동 조건을 근본부터 바꾸고 싶어서였다는 사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편집부 모두가 한참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한국 문학과 역사,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번역할 만한 좋은 책을 계속 찾아갈 생각입니다. 춘산은 이미 황석영 작가의 소설 『철도원 삼대』를 펴낸 적이 있고, 올해 하반기에는 그의 자전적 기록인 『수인』도 출간할 예정입니다.
먼저 대만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한국 노동운동의 힘은 앞선 세대의 희생과 노력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사실, 대만이 거기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사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다음으로는 젊은 세대에게요. 지금 우리가 누리는 노동 환경이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문제들 역시 선배 세대의 경험 위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논픽션을 사랑하는 분들. 이 책은 낯선 이야기를 가장 뭉클한 방식으로 전해주는 보석 같은 작품입니다. 분명 마음에 닿으실 거라고 믿습니다.